“나는 단지 인민의 아들일 뿐이다.” – 호찌민
🌱 1890년, 한 아이의 탄생 – 응에안 성에서 시작된 여정
1890년 5월 19일, 베트남 중부 응에안 성(Nghệ An)의 가난한 유교 가문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응우옌 신꿍(Nguyễn Sinh Cung). 이 아이는 훗날 ‘호찌민’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꾸게 됩니다.
아버지 응우옌 신싹(Nguyễn Sinh Sắc)은 학식이 높았지만 신분제도에 반기를 든 인물이었고, 그 정신은 어린 아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신궁은 일찍부터 불평등한 사회와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죠.
🌍 젊은 날의 방랑 – 세계 속에서 깨닫다
1911년, 21살이 된 그는 ‘바 반(Ba Văn)’이라는 가명으로 프랑스 선박 ‘라투슈 트레빌호’의 요리보조로 승선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국을 떠돌며 약 30개국을 여행하게 됩니다.
- 프랑스에서는 유학생과 노동자로 생활하며 민족 해방에 눈뜨고,
-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 운동에 감화되며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배우고,
- 영국과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을 접하게 됩니다.
이 시기 그는 ‘응우옌 아이 꾸옥(Nguyễn Ái Quốc)’, 즉 '애국자 응우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글과 청원서로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고발합니다.
🔥 혁명가의 탄생 – 식민지 베트남을 꿈꾸다
1920년, 프랑스 공산당 창립 멤버로 참여한 그는 계급해방과 민족독립이 같은 뿌리임을 확신합니다. 이후 그는 모스크바 코민테른 훈련소에서 수학하며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죠.
1930년, 그는 홍콩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립하며 무장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1941년에는 무려 30년 만에 베트남에 귀환합니다.
그가 정글 속에서 조직한 ‘비엣민(Việt Minh, 베트남독립동맹)’은 곧 프랑스와 일본에 맞서는 항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역사적 순간 – 독립을 외치다 (1945년)
1945년 9월 2일, 하노이 바딘 광장에 모인 수십만 군중 앞에서 호찌민은 낭독합니다.
“베트남은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이다. 그 누구도 이를 되돌릴 수 없다!”
이날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선포되며, 그는 초대 주석에 오릅니다. 이는 아시아에서 식민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룬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건국이었습니다.
🪖 전쟁과 분단 – 끝나지 않은 투쟁
그러나 베트남의 독립은 곧 프랑스와의 재전쟁(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이어졌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로 프랑스는 철수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며 또 다른 전쟁(베트남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때 호치민은 북베트남에서 지도자로 남아, 남베트남 해방과 국가 통일을 위해 모든 힘을 다했습니다.
🕯️ 1969년 9월 2일 – 그가 떠난 날
그토록 바라던 조국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9월 2일, 하노이에서 호치민은 향년 79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담백했습니다.
“나의 장례는 간소히 치르고, 조국이 통일되거든 나를 남쪽에 묻어다오.”
그의 시신은 현재 하노이의 호치민 묘소에 안치되어 있으며, 매일 수천 명의 베트남인과 외국인들이 그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 호치민 주석의 명언
- “교육은 민족의 생명이다.”
- “작은 나라도 큰 꿈을 꿀 수 있다.”
- “국민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다.”
- “독립이 없는 삶은 노예의 삶이다.”
🧡 호찌민의 유산
- 호치민 시(Ho Chi Minh City): 과거 사이공이 그의 이름으로 바뀜
- 호치민 묘소: 하노이 중심에 있는 국가적 성지
- 베트남 전역의 거리·학교·공원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음
- 국제적 존경: 쿠바, 북한, 라오스 등에서도 동상 및 박물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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